공인회계사가 알려주는 회계사에 대한 궁금한 것들
얼마 전 제56회 공인회계사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2021년인 올해도 고려대학교 출신 합격자가 157명으로 공인회계사 대학별 합격자 수 1위를 놓치지 않았습니다(대학별 합격자 현황은 하단에 링크로 첨부했습니다). 누적 합격자 수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고려대학교이니 가장 흔한 공인회계사가 고려대 출신 회계사일 텐데요 제가 그중 한 명입니다.
대학 동기나 선후배인 회계사, 삼일회계법인에서 만난 많은 동료 회계사들부터 지금까지 일하면서 만난 회계사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제 공인회계사 등록 번호가 4자리이니 제가 얼마나 경력이 오래된 회계사인지는 이제 막 회계사가 되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실 수 있으실거에요.
제 경험과 함께 제가 직접 본 친구 회계사, 선후배 회계사, 동료 회계사들의 다양한 상황들을 바탕으로 오늘은 공인회계사 연봉, 하는일, 전망 같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저 들은 이야기, 카더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회계사의 진짜 현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업계 불문율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하거나 회계사를 직업으로 고려하고 있는 분들께는 도움이 될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4대 회계법인 입사와 회계사 연봉
저는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삼일회계법인에 입사를 했습니다. 당시 삼일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에 합격했지만 고민 끝에 삼일에 입사를 했습니다. 업계 1위가 삼일인데 무슨 고민이냐 싶으실 수도 있지만, 저는 당시 리크루팅 과정에서 알게 된 안진회계법인의 이사님들과 분위기가 맘에 들어서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귀가 얇았던 저는 제 느낌과 생각보다는 주변의 권유와 조언으로 삼일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삼일회계법인에 떨어진 제 친구는 제가 안진을 거절해서 나온 티오로 안진회계법인에 입사를 했는데 지금까지 만족하며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삼일회계법인을 나왔지만요...
아무튼 저처럼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후 커리어의 시작은 대부분 회계법인 입사입니다. 공인회계사로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1년간 실무 수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습공인회계사라는 딱지를 붙이고 회계법인에 들어갑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여개의 회계법인이 있는데 삼일, 삼정, 한영, 안진회계법을 4대 회계법인 또는 Big 4라고 하고 나머지 회계법인을 로컬 회계법인이라고 구분합니다. Big이라는 수식어만큼 4대 회계법인의 매출 규모, 소속 공인회계사 수 등이 다른 회계법인을 압도합니다. 예전에는 Big 4 중에서도 삼일이 원탑이었는데 최근에는 삼정 회계법인의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삼일과 삼정회계법인을 Big 2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16년 이후 4대 회계법인에서 채용하려는 수습 공인회계사 인원이 2차 시험 최종합격자 보다 많아서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학벌, 나이 등을 불문하고 4대 회계법인에 입사가 가능해졌습니다.
그전에 제가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채용 인원보다 합격자가 많다 보니 학벌과 나이가 4대 회계법인에 입사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고 제 대학 동기나 선배들 중에서도 Big4에 탈락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2020년부터 다시 빅4의 신입 채용 인원이 줄어들어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 모두가 4대 회계법인에서 입사하는 건 아니지만 합격자의 80% 이상은 빅 4에서 데려가고 있습니다.
4대 회계법인에 입사하지 못해도 취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회계사의 장점입니다. 로컬 회계법인중에서도 대형회계법인에 속하는 삼덕 회계법인, 대주 회계법인 등 수습회계사를 채용하는 회계법인이 많거든요.
2018년 신외부감사법 시행으로 주기적인 감사인 지정제 덕분에 로컬 회계법인들이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 수습 공인회계사의 연봉을 Big 4 수준에 맞춰 주며 데려가고 있습니다.
회계법인의 회계사 직급과 연봉
회계법인의 경영지원팀같은 백오피스 직원은 다른 일반 회사와 같이 사원, 대리, 과장 등의 직급체계를 갖습니다.
하지만 회계사는 좀 다른데요. 빅 4는 해외 유명 회계법인 PwC, KPMG, EY, Deloitte와 제휴를 맺고 있다 보니 직급 체계도 그들처럼 Associate, Senior Associate, Manager, Senior Manager, Director로 구성됩니다.
회계법인에 입사한 회계사는 어쏘(또는 주니어 어쏘)부터 시니어 어쏘(또는 그냥 시니어), 매니저, 시니어 매니저, 디렉터 순으로 진급을 하게 되는거죠. 삼정은 매니저 직전의 시니어 어소를 S. Senior라고 합니다.
어쏘 중에서도 신입 수습회계사를 뉴스텝이라고 부릅니다. 뉴스텝인 신입 회계사의 초봉은 평균 4천만 원 중·후반대입니다. 연봉계약서에 사인하는 기본 연봉에 야근수당(시즌엔 100만 원 이상), 상여금(월급의 100~300% 정도)을 합치면 연봉 5천만 원 정도 받습니다.
회계사 등록을 위한 수습기간은 1년이지만 외감법에 따른 외부감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2년의 실무수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회계사 2년차 어쏘의 연봉은 1년 차에서 200~300만 원정도밖에 인상되지 않습니다.
감사 시즌을 2번 보내고 공인회계사만이 할 수 있는 회계감사 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3년차(시니어 어쏘)가 되면 최소 천만 원 이상의 연봉이 인상되면서 5천 후반에서 6천만 원대의 연봉을 받게 됩니다. 뉴스텝 때는 4대 회계법인이든 로컬이든 큰 차이가 없는 연봉이 3년 차부터는 차이가 좀 생기기 시작하는데요. 평균적으로 삼일이 다른 회계법인들보다 최소 3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상 더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본 연봉이 6천만 원대이고,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하면 7~8천만 원이상 받습니다.
시니어 어쏘에서 매니저가 될 때까지는 다시 연봉이 연평균 300~400만 원정도 인상됩니다. 회계법인 5년 차 시니어의 연봉과 수당을 합치면 8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도 받습니다.
매니저로 진급하는 6년차가 되면 다시 또 연봉이 큰 폭으로 상승하는데요. 평균적으로 1천300~500만 원정도 연봉이 상승해 6년 차 매니저 기본 연봉은 대략 8천만 원 정도입니다. 역시 시니어 매니저가 되기 전인 8년 차까지는 연평균 연봉 인상액이 300만 원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매니저부터는 자기 성과에 따라 상여금의 차이도 큰 편입니다. 감사 수임을 해오거나 컨설팅 클라이언트를 데려오는 능력에 따라 향후 디렉터까지 승진할 것인지 어느 정도 싹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성과에 따라 매니저는 세전 연봉 1억 2~4천 정도 받습니다.
회계법인에 입사한 지 9년차가 되고 시니어 매니저로 진급하면 기본 연봉이 1억 원가량 되고, 성과에 따른 상여금을 합치면 세전 연봉으로 1억 4천에서 5천만 원가량 받습니다.
시니어 매니저까지는 회계법인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으면 대부분 진급하는데 디렉터부터는 좀 다릅니다. 영업능력을 인정받는 경우 회계법인 입사 12년차가 되면 디렉터가 됩니다. 디렉터 진급이 안되면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기 때문에 알아서 퇴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계법인에 입사하는 평균 나이가 26~27세이기 때문에 디렉터가 되는 평균 나이는 30대 후반입니다. 30대 후반에 이사직급을 다는 거죠. 디렉터부터는 그 안에서 다시 이사, 상무, 전무, 부대표 같은 직급으로 진급하게 되고 상무 이상부터 보통 30~50명 이상의 회계사가 소속된 한 팀의 팀장을 맡게 됩니다. 디렉터가 되면 대부분 회계법인의 지분을 사서 주식회사의 주주와 비슷하게 지분 파트너가 됩니다.
디렉터부터 연봉은 정말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회계법인은 매년 사업보고서를 다트 전자공시사이트에 공시를 하고 있는데 이 공시 자료를 통해 지분 파트너 현황과 이사의 연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2020년도 삼일회계법인 사업보고서에 공시된 이사의 연봉인데요. 적게는 5억 원에서 많게는 18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김영식 대표이사의 연봉이 18억 원으로 제일 많이 받네요.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연봉 수준은 대략적이고 평균적인 수준입니다. 회계법인에 따라서는 더 많이 받을 수도 더 적게 받을 수도 있고, 승진하는 연차도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회계사 현실과 하는일 및 전망
회계사 현실 생각보다 괜찮아요
회계사가 시험이 어려운 전문직 치고는 초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가장 빨리 이사까지 진급을 할 수 있고, 억대 연봉까지 도달하는데도 걸리는 시간도 짧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제가 회계감사를 나가면 감사 대상 회사의 부장님이 저희 이사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웬만한 대기업의 이사 연봉보다 회계법인의 이사 연봉이 높았거든요.
하지만, 회계사의 현실은 회계법인에 남아서 이사까지 진급하는 경우가 매우 소수라는 것입니다. 학벌, 인맥, 영업능력, 적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매니저 직급을 달기도 전에 회계법인에서 퇴사하는 회계사가 대부분입니다.
제 삼일회계법인 입사 동기 중에서 4분의 1이 2년차에 이직을 했고, 나머지 중에 절반 이상이 3년 차에 이직을 했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동기는 손에 꼽습니다. 다른 업무가 하고 싶을 경우 회계감사 팀에서 택스팀이나 기업자문 팀으로 회계법인 내에서 트랜스퍼도 가능한데 보통은 다른 회계법인이나 다른 기관으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뭔가 배신자 느낌으로 보는 시선도 있고 진급에 있어 끌어 주는 파트너가 없어 불리할 수 있거든요).
감사 시즌 중엔 밤을 새다시피하고 저녁이 없는 삶이 싫어 워라밸이 좋은 로컬 회계법인이나 공기업으로 이직하기도 하고, M&A 실사나 컨설팅 업무를 하다가 증권사 IB로 이직하기도 하고, 코스피나 코스닥 상장기업의 CFO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회계사 하는 일 정말 다양해요
매년 1,000명 이상을 선발하고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이직이 가능할만큼 수요가 많은 직업이기 때문에 공인회계사 전망이 밝고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인회계사는 공인회계사법으로 공인회계사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특별한 업무인 '회계감사'로 자기밥그릇을 확실히 갖고 있으면서도 기업경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있어 정말 다양하게 돈을 벌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모든 기업의 필수요소인 세무와 회계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직업이다보니 세무사, 변호사, 관세사 등 다른 전문직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고, M&A 자문이나 기업가치 평가 등 각종 컨설팅 업무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 회계법인의 매출액도 3분의 1 정도가 회계감사 부문에서 발생하고 경영컨설팅 부문에서 40~50% 정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도 회계법인에서 감사 시즌에는 회계감사를 했지만, 비시즌에는 경영진단, M&A 실사, 정부과제, 기업가치평가 등 정말 다양한 업무를 해봤습니다. 다양한 업무를 해보다 보니 좀 더 깊이 해보고 싶은 다른 일이 생겨 이직을 결심하게 되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도 만나 폭넓은 인관관계를 만들다 보니 이직의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회계사는 기업을 상대로 한 회계감사나 컨설팅 업무를 하면서 돈을 벌거나 기업의 내부인이 되어 회계나 재무 팀장, 경영전략팀장, 감사 등의 직책을 맡으며 돈을 벌수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본인의 적성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근무환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 주변의 회계사는 정말 다양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는 얼마전에 개업을 했고, 금융감독원과 산업은행 시험을 보고 입사해 공기업 직원으로 만족하면서 일하는 동기도 있고, 스타트업 CFO로 재미있게 일하며 사는 친구도 있습니다. 대기업 회계 팀장으로 일하기도 하고, 유명 증권사 IB파트에서 IPO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벤처캐피털 심사역으로 일하는 회계사도 있으며 애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회계사도 있습니다.
연봉이나 보수는 천차만별입니다. 4년차 때 회계법인을 나가 중소기업 회계팀의 과장으로 이직했던 동기는 연봉은 적었지만 이직하면서 받았던 스톡옵션이 있었는데 상장하면서 회사 주가가 상승해 엄청난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적당한 연봉을 받으면서 워라밸이 좋은 삶을 살 수도 있고, 몸은 힘들지라도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삶을 원하면 또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게 회계사입니다.
제가 아는 회계사 중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을 싫어하는 경우는 있으나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괜히 취득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봤습니다. 늘 선택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회계사 전망 너무 밝은가요?
공인회계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너무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고 있는거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계사가 하는 일이 쉽거나 편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직업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감사시즌에는 낮에는 여기저기 감사 대상회사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밤에는 다시 회계법인에 돌아와 밤을 새우며 일해야 할만큼 힘들기도 하고, 전문가로서 성장하려면 계속 공부해야 하고 한계에 부딪칠 때도 있고, 이렇게 일하는 데 이거밖에 못 벌어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회계사가 괜찮은 직업이고 전망이 좋다고 말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전문직이면서도 의사, 세무사, 관세사, 감정평가사, 변리사 등 다른 전문직보다 수요가 많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다양하게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회계법인이 싫어서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으로 이직하고 싶으면 자격증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서 유리하고, 삼성같은 대기업이든, 은행이든, 증권사든 어디로 이직하든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알아줍니다. 또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게 싫으면 개업이라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시험이 어려운 자격증은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데 공인회계사가 대표적으로 공부한만큼 쓸모 있는 자격증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K대라는 학벌 때문에 생기는 선택의 기회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있으실까 봐 덧붙이자면, 삼일 회계법인은 다른 회계법인보다 학벌을 많이 보는 편이라 좋은 학벌이 유리하긴 하지만 최근에는 학벌이 입사와 진급에 있어 미치는 영향이 예전만큼 크지 않습니다. 기타대(제가 삼일에 다닐 때 서연고와 서성한 이외의 대학 말할 때 기타대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나 지방대 출신도 4대 회계법인에 많이 있고, 본인의 영업 능력에 따라 파트너급으로 승진하시는 분도 꽤 있습니다. 그리고 학벌을 특히 중요시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4대 회계법인 출신 공인회계사는 경력만큼 인정을 받아 이직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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